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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15 개항기 홍선대원군(1863~1873) 한국사 문제 정답 및 오답 해설 공무원시험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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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15 개항기 홍선대원군(1863~1873) 한국사 문제 정답 및 오답 해설 공무원시험준비




문제 1
정답: 3.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를 거부하였다

해설
지문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에 대한 미국 측 질의로, 이 사건은 신미양요(1871)로 이어진다. 이후 흥선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공식화했다.

1번: 정조의 군사개혁(18세기 말) → 시대 불일치
2번: 세도정치 시기(19세기 전반) 상황, 대원군 집권 이전
3번: 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 정책의 상징적 조치로 옳음
4번: 병자호란(1636) 직후, 17세기 → 시대 불일치


문제 2
정답: 4. 조선군이 강화도에서 외국 군대와 교전 중 장군이 전사하였다

해설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병인박해 → 병인양요(1866) → 이어서 신미양요(1871) 발생.
이때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 전투에서 전사함.

1번: 황사영 백서 사건(1801, 신유박해) → 훨씬 이전
2번: 임술농민봉기(1862) → 사건 이전
3번: 나선정벌(17세기 중반, 효종) → 무관
4번: 신미양요 전개 중 실제 있었던 일로 정답



문제 3
정답: 2. 외국인들이 묘를 파헤쳐 보물을 탈취하려다 실패하였다

해설
이는 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
→ 대원군 집권기(1863~1873) 대표 사건.

1번: 운요호 사건 → 1875년, 대원군 집권 이후
2번: 정확한 사건이며 시기 일치
3번: 민비 암살 이후 갑신정변·임오군란 등 외교 갈등 시기
4번: 거문도 사건(1885) → 대원군 실각 후



문제 4
정답: 3. 전개 과정에서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당하였다

해설
(가)는 병인양요(1866). 프랑스군이 강화도 침공, 정족산성(전등사 인근)에 침입. 이 과정에서 외규장각 도서 약탈.
양헌수 장군이 이를 방어하고 퇴각시킴.

1번: 운요호 사건은 1875년, 일본 관련
2번: 병자호란(1636), 인조가 피란 → 시기 불일치
3번: 정확한 사건 설명, 병인양요 핵심 피해
4번: 이용태는 임술민란(1862) 수습을 위한 안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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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의 문을 두드린 사건들 – 대원군 시기의 조선은 어떻게 외세에 대응했을까?


1860년대 조선. 격동의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도 더 이상 고립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흥선 대원군 집권기(1863~1873)는 외세의 통상 요구와 침략, 그리고 내부의 혼란이 동시에 몰아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사건들을 따라가며 조선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1. 평양에 침입한 미국 상선, 그리고 이어진 무력 충돌
1866년, 미국 상선이 평양 대동강까지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다 조선 민과 관군의 반격으로 불타 침몰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제너럴 셔먼호 사건입니다. 미국은 이에 대해 무력 시위로 대응했으며, 결국 1871년에는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까지 침입하는 사태로 번집니다. 이것이 바로 신미양요이며, 조선은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의 결사 항전으로 맞섭니다.

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흥선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를 명백히 거부하는 태도를 천명하게 됩니다.



2. 외규장각 도서 약탈과 프랑스군의 침입
같은 해, 프랑스도 병인박해를 구실 삼아 조선을 침략합니다.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의 수많은 도서를 약탈하고 정족산성 일대까지 침입합니다. 하지만 양헌수 장군의 방어로 조선은 이를 막아냅니다.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해 전등사 인근에는 승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3. 대원군의 분노를 자극한 도굴 사건
1868년에는 독일인 상인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외세에 대한 대원군의 반감은 더욱 커졌고, 이는 조선의 쇄국 노선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됩니다.


4. 그 이후, 조선의 문은 결국 열리게 된다
대원군 실각 이후 1875년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무력 시위를 감행하고, 1876년에는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공식적으로 개항하게 됩니다. 이후 1880년대에는 임오군란, 거문도 사건, 외교 사절 피살 등 더 복잡한 국제 관계 속으로 휘말려들게 됩니다.



대원군 집권기는 ‘닫힌 나라 조선’이 외세의 위협에 맞서 무력 저항과 철저한 쇄국으로 대응하던 마지막 시기였습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오페르트 도굴 사건 등은 모두 조선이 개항 이전 어떤 고민과 위기를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들입니다.

역사는 단절이 아닌 흐름입니다. 이 시기의 외침과 저항을 이해한다면, 조선이 문을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명확히 보일 것입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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