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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복습)250728 통일신라, 발해 한국사복습 빈칸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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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28 통일신라, 발해
한국사복습 빈칸채우기 공무원시험준비 9급 공시생 한능검준비 공무원한국사 공부 대비입니다~

1. 당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고 삼국 통일을 마무리한 인물은 왕 __________이다.


2. 문무왕은 지방 행정을 감시하기 위해 특별 감찰관인 __________을 활용하였다.


3. 신문왕은 자신의 외척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고 __________ 세력을 약화시켰다.


4. 신문왕은 중앙 정치 기구인 __________의 우두머리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하였다.


5. 토지 제도를 개편한 신문왕은 토지를 관료에게 나누어 주는 __________ 제도를 시행하였다.


6. 통치 체제 강화를 위한 유학 교육기관으로 신문왕은 __________을 세웠다.


7. 통일 후 신라는 지역 행정을 정비하고 수도의 편중 문제를 해결하고자 __________을 설치하였다.


8. 신라는 중앙과 지방의 군사력을 정비하면서 9서당과 __________의 체계를 갖추었다.


9. 귀족들의 지방 권한을 견제하고자 신라 정부는 __________이라는 통제 제도를 도입하였다.


10. 신라 후기에는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__________ 체제에 균열을 만들었다.


11. 진골 중심의 지배력 약화로 각 지방에서 __________ 세력들이 성장하였다.


12. 골품제를 비판하며 새로운 질서를 주장한 인물들은 __________ 두품에 속했다.


13.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은 지방 호족의 지원 아래 __________되었다.


14. 장보고는 해상 활동을 바탕으로 __________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였다.


15. 견원은 후백제를 세우고 외교적으로 __________, __________ 등과 접촉하였다.


16. 후백제의 공격으로 신라의 수도가 함락되고 __________왕이 사망하였다.


17. 송악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운 궁예는 __________라는 나라를 세웠다.


18. 궁예는 정치 제도를 정비하며 __________성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축하였다.


19. 궁예는 국호 변경 후 수도를 옮겨 새 수도인 __________에서 정권을 운영하였다.


20. 후백제군은 고려와의 __________ 전투에서 승리하며 세력을 넓혔다.


21. 고려의 왕건은 천성 전투에서 __________의 군대를 물리쳤다.


22.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규합하여 __________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23. 발해는 외교 문서에서 고구려 계승 정통성을 주장하며 왕 대신 __________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24. 대문예와 장문휴는 발해의 군사력을 이용해 각각 __________ 말갈과 당나라를 공격하였다.


25. 발해 무왕은 독자적 연호로 __________을 사용하고 외교적으로 일본과 교류하였다.


26. 발해의 행정 제도는 당나라 제도를 바탕으로 하여 __________ 체계를 갖췄다.


27. 발해 문왕은 ‘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신라와 연결되는 __________를 열었다.


28. 발해의 전성기를 이끈 왕은 건흥 연호를 사용했고, 이 시기 발해는 __________라 불릴 정도였다.


29. 발해는 당 제도를 참조했지만 자체적인 방식으로 중앙 행정 __________를 운영하였다.


30. 발해에서 국정을 총괄한 최고 관리는 __________였고, 관리 감찰은 대감찰 기관이 맡았다.


31. 발해는 수도를 중심으로 5경과 15부, 그리고 여러 __________를 통해 지방을 통치하였다.


32. 인재 양성을 위해 발해는 유교 교육기관인 __________을 운영하였다.




(답)


1. 문무왕
→ 해석: 문무왕은 당의 공격을 막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2. 사신
→ 해석: 문무왕은 지방 감찰을 위해 특별한 사신(감찰관)을 파견하였다.


3. 진골 귀족
→ 해석: 신문왕은 장인인 김흠돌의 반란을 계기로 진골 세력을 숙청했다.


4. 중시
→ 해석: 집사부를 총괄하는 중시의 권한을 강화해 왕권을 강화했다.


5. 관료전
→ 해석: 토지를 관리에게 나눠주는 제도인 관료전을 시행했다.


6. 국학
→ 해석: 유학 교육 강화를 위해 국학을 세웠다.


7. 9주
→ 해석: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소경을 설치해 수도 편중을 보완했다.


8. 10정
→ 해석: 신라는 중앙의 9서당과 지방의 10정으로 군사 조직을 구성했다.


9. 상수리 제도
→ 해석: 지방 귀족 자제를 수도에 인질처럼 머물게 하는 제도이다.


10. 김헌창
→ 해석: 진골 가문인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중앙 권력에 도전했다.


11. 호족
→ 해석: 지방의 유력자들이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했다.


12. 6두품
→ 해석: 하위 귀족이었던 6두품은 골품제를 비판하며 개혁을 주장했다.


13. 성행
→ 해석: 선종은 수도보다는 지방에서 호족의 후원 아래 크게 유행했다.


14. 청해진
→ 해석: 장보고는 해상 교역을 기반으로 청해진을 근거지로 삼았다.


15. 후당, 오월
→ 해석: 견원은 외교적으로 중국의 후당, 오월과 사신을 교환하였다.


16. 경애왕
→ 해석: 후백제군은 신라 수도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게 했다.


17. 후고구려
→ 해석: 궁예는 송악을 중심으로 후고구려를 세웠다.


18. 광평성
→ 해석: 궁예는 광평성 등 정치 조직을 마련해 체계를 갖췄다.


19. 철원
→ 해석: 궁예는 국호를 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수도를 옮겼다.


20. 공산
→ 해석: 후백제는 공산 전투에서 고려군을 이겼다.


21. 고창
→ 해석: 고려 왕건은 고창 전투(안동 전투)에서 후백제를 물리쳤다.


22. 대조영
→ 해석: 발해를 건국한 인물은 고구려 유민 출신 대조영이다.


23. 고구려
→ 해석: 발해는 자신을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 표현하였다.


24. 장문휴
→ 해석: 장문휴는 발해의 장수로 당나라 등주를 공격했다.


25. 인안
→ 해석: 무왕은 인안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다.


26. 3성 6부
→ 해석: 발해는 당의 제도를 바탕으로 3성 6부 체제를 마련했다.


27. 신라도
→ 해석: 신라와의 교류로 만들어진 통로로, 문왕 때 개설됨.


28. 해동성국
→ 해석: 당나라가 발해의 전성기를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29. 명칭
→ 해석: 이름은 당을 따라 했지만 운영 방식은 독자적으로 운용했다.


30. 정당성
→ 해석: 정당성의 수장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했다.


31. 현
→ 해석: 발해는 5경 15부 62현의 지방 행정 체계를 갖췄다.


32. 주자감
→ 해석: 발해의 교육기관으로 유학 중심 교육을 담당했다.



짤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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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신라 연표

660년, 신라는 김유신이 이끄는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켰다. 661년 태종무열왕이 죽고 문무왕이 즉위한 후, 신라는 고구려까지 정복하기 위해 당과 협력했다. 결국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며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하지만 통일 직후 당은 신라 영토를 지배하려 하였고, 이에 670년부터 나당전쟁이 시작되었다. 신라는 675년 매소성 전투, 676년 기벌포 전투에서 승리하며 당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축출하고 자주적 통일을 이루었다.

681년 문무왕이 죽고 신문왕이 즉위하였다. 그는 진골 귀족들의 반란, 특히 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였다. 682년에는 국학을 설치하여 유학 교육을 강화하고, 687년에는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켰다. 지방 통제를 위해 상수리 제도도 시행하였다.

8세기 중반, 경덕왕은 9주 5소경 체제를 정비하고 지방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었으며, 불국사와 석굴암의 건립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이 무렵 신라는 문화적 전성기를 누렸다.

780년 혜공왕이 피살되면서 진골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이 시작되고, 신라는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828년,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교역을 장악하였고, 889년에는 진성여왕 때 각지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 중앙 통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900년,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반기를 들었고, 901년 궁예도 후고구려를 세웠다. 결국 918년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927년 후백제가 신라의 경애왕을 살해하면서 신라 왕권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마지막 왕 경순왕은 935년 고려에 항복하며 신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발해 연표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진국을 세우고, 곧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다. 발해는 건국 초기부터 당과의 갈등을 겪었지만, 무왕(재위 719~737)은 강경책을 펼치며 흑수말갈을 정벌하고 장문휴를 보내 당나라 등주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 시기 무왕은 인안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고 일본과 외교를 강화하였다.

737년 문왕이 즉위하면서 발해는 안정과 발전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문왕은 대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당과 우호를 맺으며 3성 6부의 중앙 관제를 정비했다. 762년에는 신라와 연결되는 신라도를 개설해 교역과 외교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문왕의 뒤를 이은 성왕, 선왕 시기 발해는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번영을 누렸다. 선왕은 건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9세기 후반부터 귀족 간의 내분과 말갈 세력의 반발, 거란의 성장 등으로 발해는 점차 약화되었다. 결국 926년, 거란(요나라)의 침입으로 수도 상경이 함락되면서 발해는 멸망하였다. 이후 일부 유민은 고려로 유입되었고, 일부는 동북방에 잔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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